日帝의 奸惡한 殖民地政策에 견디다 못하여 드디어 우리 겨레는 自主獨立의 높은 횃불을 들고 奔流처럼 거리거리를 메우며 大韓獨立萬歲를 목이 터져라 외쳤으니 이것이 바로 己未獨立運動이었다. 우리 고장 古德에서도 怒濤와 같은 五千餘 群衆을 이끌고 倭兵의 銃劍에도 屈함이 없이 抗爭하다가 敵의 칼에 殉節하신 거룩한 어른이 계셨으니 바로 印漢洙 義士가 그 분이시다. 義士는 喬桐人으로 兒名은 今信이니 一八八一年正月二十日 古德面 上官里에서 出生하였다. 朝鮮 末期의 國力은 風前燈火와 恰似하던 時期에 成長하여 日帝의 我國侵略을 保護條約이라는 美名下에 强占하는 것을 보고 義憤의 血淚를 삼키며 機會만을 엿보던 中 一次世界大戰의 膳物인 民族自決이라는 術語를 받은 우리 民族은 己未年三月一日에 一齊히 蜂起하여 倭敵들의 肝膽울 서늘케 하였던 것이다. 當時 義士께서는 三十八歲의 壯年의 몸으로 이곳 市場에서 奮然蹶起하여 先頭指揮하던 中 無慘히도 蠻刀에 殉節하였으니 어찌 哀惜할 뿐이리오. 噫噫라 義士의 忠國丹誠의 精神을 이어온 張文焕 先生과 趙仁元 先生이 群衆을 이끌어 示威를 繼續하는 등 義士의 遺骸를 本面 紙谷里에 모시고 張文換 先生은 獄苦까지 치렀으니 義士의 愛國丹血로 말미암은 것이거늘 우리는 이 거룩한 精神을 이어 받아 總和團結을 더욱 더 다짐하는 뜻에서 여기에 이 碑를 세우노니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後孫들이여 발길을 멈추고 敬意를 表하며 愛國愛族하는 마음을 굳게 다지자.